면회

준우가 군대에 가고 얼마쯤 지났을 때였다. 집으로 낯선 남자의 생경한 목소리가 전화를 걸어와 나를 찾았다.

“누구세요?”

“저, 혹시 군대 보낸 친구가 있지 않아요?”

수화기 너머의 남자는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자기에게 전화를 부탁한 친구의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면회를 한번 오라는 것이었다. 참 황당한 전화였지만, 내 직감은 그것이 준우의 소식임을 단박에 알아챘다.

나는 이듬해 주말, 어딘지도 모를 그곳을 향해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겨우 찾아간 부대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준우가 하필이면 훈련을 나갔다는 것이다. 당황해 하는  내게 부대의 군인은 무지하게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  서울 가는 길목에 있는  곳이니 , 거길 꼭 들렀다 가세요. 제가 연락해 놓으면 준우가 금방 나올 겁니다.”

그 친절한 ‘군인 아저씨’의 말에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마음으로 다시 길을 나섰다. 한적한 강원도인지 경기도의 끝자락인지 모를 도로변에 부대가 있었다. 시멘트 블록 같은 벽에 철망이 을씨년스럽게 둘러쳐져 있고, 오두막 같은 초소에 군인이 서 있었다. 위병소 문 앞에 들어서니, 마침 연락을 받았는지 나를 보며 준우를 만나러 왔냐고, 금방 나올 거라며 안으로 안내해 주었다.

잠시 후, 저 멀리서 걸어오는 준우를 보았다. 부대 앞 작은 시골 구멍가게 평상에 우리는 마주 앉았다. 과자 몇 봉지와 맥주 몇 병을 사이에 두고 무슨 얘기를 얼마나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리고 자리가 끝날 무렵, 거기서도 준우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 계산을 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긴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군인의 월급이 얼마나 쥐꼬리만 한지,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그렇게, 너무나 당연하게 준우가 계산하도록 두었다.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래도 여자친구가 면회를 가면 통닭이라도 한 마리 들고 가야 하고, 고생하는 군인을 위해 계산도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정말로 몰랐다. 그 무지함과 배려 없음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슴에 얹힌 체증처럼 준우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짧은 만남이 끝나고 돌아가려는데, 아차 하는 사이에 서울로 가는 막차가  떠났단다 . 사방은 어두워지는데 시골길 한복판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였다. 저만치서 오토바이 한 대가 불빛을 비추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무조건 오토바이를 막아 세웠다. 그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서울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고 사정을 했다.

내 다급한 모습에 오토바이를 탄 낯선 이는 힐끗 나를 보더니 뒤에 타라고 턱짓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하고 큰일 날 일이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밤 깊은 시골길에 갇혀 집에 못 가는 게 더 무서웠다. 겁도 없이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랐다.

낯선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혹시라도 몸이 닿을까 봐 온몸을 꼿꼿이 세우고 바짝 긴장했다. 오토바이가 덜컹거릴 때마다 중심을 잡으려고 의자 모퉁이를 얼마나 힘겹게 손이 하얗게 질리도록 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오토바이 아저씨는  어느 조그만 터미널 앞에서  내려 줬고 , 내 온몸은 매를 맞은 듯 뻐근하게 굳어 있었다.

 안도감과, 시골 평상에 두고 온 준우의 까슬까슬한 밤톨 머리가 번갈아 떠올랐다. 밀린  숙제를  마친 것 같기고 하고, 괜한  친절을 베푼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준우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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